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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보리 2014. 5. 26. 13:21

성령이 임하시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이것은 내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의로운 행동을 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밖에 없습니다. 의롭게 된 이후에 필요한 삶은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의 가장 큰 우선순위가 무엇이겠습니까? 쉬운 질문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이 땅에서 행하시는 분임을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9:24)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고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6:8) 그러나 가장 싫어하시고 기뻐하지 않는 것은 정의를 행치 않고, 사회적 약자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지는 않으면서 많은 헌금과 거룩하게 드려지는 예배와 찬양은 이제 싫증이 났으니 더 이상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의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말씀합니다.(1:11-20)

  

그래서 복음은 모든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고, 복음을 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내용은 정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보와 보수, 자유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이 모두 맞다는 것과 동시에 모두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자신들이 좋아하는 한 부분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간단히 요약해주셨습니다.(10:27) 여기에 첨가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의는 적극적인 이웃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적당히 사랑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적극적인 이웃사랑을 위해 때로는 불의한 제도와 시스템을 변화(transformation)시키라는 말씀입니다.

  

19, 10, 18(모두 참조해서 연구를 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나름 열심히 살아왔었다고 생각을 했지만 예수님께서 한 가지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서 네 소유(끄떼마)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니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언, 속여 빼앗지도 않는(10장에만 나옴) 정직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위해 청부살인이나 사기, 공갈, 협박을 하는 조직폭력에 속한 사람도 아니었고, 도덕적으로도 깨끗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예수님도 인정하셨습니다. 그런 청년에게 네 소유(끄떼마)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장난삼아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 내용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제외한 모든 공관 복음에 다 등장하는 부자 청년입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사랑, 정의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뜬금없는 명령을 한 근거는 희년이었습니다. 레위기 25장 희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토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누가 사고 팔 수 있는 거래대상이 아닙니다. 부자 청년의 소유(끄떼마)는 토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부자 청년이 가지고 있는 토지는 도적질하거나, 사기를 쳐서 소유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일 것입니다. 이 청년에게 예수님은 토지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4:18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이 희년성취의 주인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희년은 적극적인 이웃 사랑의 최상의 표현입니다. 영원한 가난도, 노예도, 빚쟁이도 없는 자유와 평등의 세상,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희년제도를 인간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희년의 주인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아무도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셨던 성령을 받음으로 마침내 희년이 성취되는 모습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2: 44-47과 행4: 32-35에 그 내용들이 나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 이러라

 

저는 어쩌면 예수님을 만났던 그 부자청년이 재물이 많아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지만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성령을 받고 자원하여 희년을 실천한 초대교회의 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수신하고 성찰하여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어떤 고난이 와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부활의 신앙 때문에 이제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연약하여 할 수 없지만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증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시고, 말씀하신 대로 사는 삶입니다. 이 삶을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실망하여 자신의 옛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승천 이후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난 후 완전히 다른 능력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증인의 삶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행하는 삶입니다. 이 삶은 희년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는 코이노니아의 삶입니다. 이 삶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교입니다. 선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희년이 실천되지 않고 있었던 시대에 한 부자 청년에게 토지를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고 도전한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톨스토이처럼, 진젤돌프처럼, 팔복의 최춘선 할아버지처럼 자신의 땅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주는 좋은 소식(복음)을 한국 땅과 한국 교회에서 듣고 싶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임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증인된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우리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 곧 내 소유(끄떼마)를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필요를 따라 나눌 수 있는 코이노니아가 희년의 삶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성령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개인적인 은사와 능력을 받기 위해서 성령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달으면 모든 것이 그 분의 은혜가 됩니다.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꿈 너머의 꿈을 꾸게 됩니다. 더 이상 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정의를 실천하고, 내 이웃의 굶주림, 질병과 고난이 내 아픔으로 여겨집니다.

 

이제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성령운동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성령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출처 : 캄보디아의 이웃
글쓴이 : 꿈과 미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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