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장 12절이 말씀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1) 문제제기
빌립보서 2장 12절에 보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얼핏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한다고? 분명히 구원은 삼위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지 못하면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될 것이야”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위와 같은 생각은 성경의 다른 가르침과 대립된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듭니다. 분명히 구원은 우리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요1:13; 엡1:3-14; 2:8-9; 딛3:5; 계7:10). 수많은 구절들 중에서 에베소서 2장 8-9절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라는 부분을 보면 분명히 우리의 구원은 우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디도서 3장 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는 말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 여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위의 구절이 말씀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2) 성경에 나오는 ‘구원’이라는 단어의 다양한 의미
위 본문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원’이라는 말이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 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생각하기를 성경에 나오는 ‘구원’이라는 말은 모두가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은 꼭 그런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국에 이르는 구원’을 의미합니다만, 그 외에도 ‘위험한 상태에서 건져진다’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27장 34절에 보면,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단어는 ‘천국에 이르는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고 오히려 ‘구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한글 표현에 ‘구원’이라는 말은 salvation 이라는 말 뿐만 아니라 rescue 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3) 성화로서의 ‘구원’
그 외에도 ‘구원’이라는 말은 이른바 ‘구원의 서정’(the order of salvation)의 각 단계에 해당하는 ‘중생, 칭의, 양자됨, 성화’ 등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이 바로 그러한 경우인데, 여기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는 말씀은 우리가 죄에서 스스로 생명으로 옮겨지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삼위 하나님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생명으로 건진바 된 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루라”(katerga,zesqe)라는 말은 ‘성취하다, 도달하다, 초래하다’는 뜻으로 계속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구원이 십자가 사역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성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증진시키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의 앞뒤 문맥과 관련해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는 말은 1장 27절에서 말하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는 것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는 말씀이 우리들의 노력을 통한 구원이 아님을 확실히 밝히기 위해서 곧이어 13절에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구원, 곧 이미 받은 완전한 의(義)에 일치하는 인격과 삶을 현실 속에서 이루라는 뜻입니다. 즉 실제적 순종의 생활을 가리킵니다. 구원받아 거룩하게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을 그들의 실제적 삶 속에서 나타내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우리의 현실 속에서 나타내어야 할 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말합니다.
4) 본문의 바른 의미
분명 신자는 자기 구원을 위해서 무언가를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고, 우리가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의 기쁨으로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히고,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물로 받은 구원을 우리의 삶에서 온전히 누리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나아가는 것이 신자의 몫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인데, 우리는 구원받은 상태에 계속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이 말씀은 로마가톨릭, 즉 천주교회에서 주장하듯이 우리의 선행이 구원의 공로가 됨을 암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하셨고 완전한 의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노력하여 얻거나 무슨 공로를 쌓을 필요도 없고 쌓을 수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성화’를 위해 일하고 계신 하나님, 우리의 ‘성화’를 위해 필요한 진정한 힘을 부여하시며 우리의 결심과 소원까지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성화’를 이루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이제 이루어 가야 할 구원(성화)조차도 우리 안에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화조차도 인간의 공로나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우리 안에서 행하시며 힘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몸튼튼 마음튼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보 노아 바보 예수 바보들 (0) | 2016.10.20 |
---|---|
[스크랩] 신약 성서 지도 (0) | 2016.01.14 |
[스크랩]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일이 또 하나 있지 (0) | 2014.08.15 |
[스크랩] 성령이 임하시면 (0) | 2014.05.26 |
성탄시 (0) | 2013.12.21 |